박집사님 신앙에세이
홍시감 품어가기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인 육적은 오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사람이다. 그가 여섯살 때 원술을 만났는데 원술이 육적에게 귤을 주어 먹으라고 했다. 육적은 먹는 둥 마는 둥 시늉만 하더니 원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얼른 귤을 집어 품 안에 감추었다. 육적이 돌아갈 때가 되어 원술에게 작별인사를 올리는데 그만 품 안에 있던 귤이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원술이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를 묻자 육적은 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노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모친을 위해 귤을 품었다는 어린 효심을 칭찬하는 이야기, 즉 '회귤(懷橘)의 고사(故事)'이다.
이를 인용하여 조선시대 선조때의 문장가인 박인로는 이른바 '조홍시가' 즉 붉은 홍시감 노래를 지었다. 박인로가 한음 이덕형을 방문했을 때 접대차 내어놓은 홍시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조를 지은 것이다.
쟁반 가운데에 놓인 붉은 홍시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귤)가 아니라 해도 품어 가지고 갈 마음이 있지만
감을 품어가도 반가워 해 줄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것이 서럽구나.
원래 감나무의 學名(학명)은「Diospyros kaki」(디오스피로스 카키)이다. 이는 디오스라는 신의 곡물이라는 의미이다. 동양적인 과일이어서일까? 성경에는 감나무나 감이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때 「고욤」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감이 재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곶감과 수정과에 대한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감의 주산지가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널리 재배되 었다. 일찍부터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물에 감이 포함되어 있었고, 각종 의식에 사용 되었으며 제물로도 올려졌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