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의 목양실에서
명치호 목사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렘 7:16)
리는 보통 기도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기도하는 것을 좋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아예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1. 문제해결만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초점은 바벨론이 유다를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며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말씀해 주신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은 그들이 회개하여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기도는 자신들의 나라가 이기게 해달라는 것이며 아니면 그들이 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 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문제가 등장을 합니다. 그때 많은 성도들은 그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어려움이 없어지기만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심심해서 너 한번 힘들어 보라고 그 문제를 허락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우리에게 필요해서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싶고 가르치시고 싶은 것이 있으셔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며 알았을 때 그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무조건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다 싫다는 식의 기도 모습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서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허락하시면 그 문제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도 알려주시는데 문제 해결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그 설명이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6:25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다니지 말라 원수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라
전쟁이 나면 밭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전쟁나면 뭐합니까? 피난을 떠나죠. 그러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라면 전쟁이 승리하기만 바라며 전쟁이 없기만 바라는 기도라면 분명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며 알았을 때 그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우상을 달라는 기도를 우리는 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렘7:30).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7:11).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 21:13).예레미야서의 내용을 예수님이 인용하시면서 설명하시는 부분이신데 특별히 여기에서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가 우상으로 가득찬 기도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간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나 이것을 떠난 간절함의 동기는 우상 때문에 간절함이 될수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런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십니까? 누구를 위해서?물질을 위해 기도하신 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물질이 왜 필요하십니까? 누구를 위해서. 물론 나를 위해 기도 해도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이것 없으면 못 살거 같아서 기도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상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 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우상이잖아요.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물질의 문제 해결해 달라는 것은 바로 우상을 달라는 기도와 같은 것이잖아요.
보통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도는 간절히 해야 한다고.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예수님도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 때문에 그 간절함이 나오느냐입니다. 내가 이것 없으면 못살 것 같으니까 내가 이것 없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으면 못살 것 같은 바로 그것이 우상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간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나 이것을 떠난 간절함의 동기는 우상 때문에 간절함이 될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처 이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거룩한 것이고 좋은 것이기에 기도만 하면 좋고 기도만 하면 거룩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혹시 하나님은 구역질 하지 않으실까요? 너무 속 들여다 보이고 너무 나만을 위하고 결국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까지 뻔뻔하게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며 나오기에.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냥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할려고 해야 합니다.
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렘5:4~5) 아는 자들도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었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렘6:10) 욕으로 여긴 이유는 자신들에게 스스로 안좋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렘 7:23) 바로 이길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 길이 전쟁의 길이고 그 길이 전쟁에서 지는 길일지라도. ✞